신앙고백

우리는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며, 우리의 사역은 바로 이 고백 위에 서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도신경)

오늘날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언제나 우리와 같은 것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신경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여기에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삼위일체

우리는 오직 한 분 하나님만 계시며, 이 하나님께서 세 위격,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존재하신다고 믿습니다.

삼위일체는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큰 신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삼위일체는 놀랍고 비범하신 우리 하나님의 본성에 관한 많은 성경적 진리를 정확하게 요약한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가 믿사오며

참 하나님은 오직 한 분, 곧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종교의 신들은 속이는 자요, 우상이요, 거짓 신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창조하고 멸하고 구원하실 권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땅 위에 있는 모든 백성이, 오직 주님만이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은 없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열왕기상 8:60

당신은 위대하시며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당신만이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86:10

히스기야의 기도

(사 37:14-20)

오, 주 우리 하나님. 이제 그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셔서 땅 위에 있는 모든 나라가 당신만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해 주십시오. 오, 주님!”

열왕기하 19:19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유대 사람3:30 유대 사람 글자 그대로는 ‘할례 받은 자들’을 받아 주신다면, 그리고 그분이 다만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라면, 틀림없이 이방 사람3:30 이방 사람 글자 그대로는 ‘할례 받지 않은 자들’도 믿음을 통하여 받아 주실 것입니다.

로마서 3:30

여러분은 한 분이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습니다. 잘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마귀들도 그것을 믿고 무서워 떱니다!

야고보서 2:19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도 진리였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진리였습니다. 교회의 처음 몇 세기 동안에도 진리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진리입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기독교 외에도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힌두교, 신도, 이교, 흑마술, 이슬람교, 유대교, 온갖 부족 신앙 등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은 우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귀신을 숭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피조 세계를 숭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 상상이 만들어 낸 것을 숭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기독교의 하나님만이 참으로 하나님이시며, 오직 기독교의 하나님만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고, 오직 기독교의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권능을 가지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성부의 권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분은 원하시는 모든 것을 이루실 힘과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권능에 견줄 것은 없습니다. 그러한 권능을 가지신 분은 오직 그분뿐이며, 전능하신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신 분이시며, 오직 하나님만이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믿습니다. 또한 오직 하나님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에 계속 생명을 주시며, 그분이 지으신 세상을 붙들고 계십니다.

천지를 창조하고 붙드시는 일에서 성부께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시지만, 우리는 성경에서 삼위일체 하나님 전체가 이 일에 참여하신다는 것을 봅니다. 성자는 성부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수단, 곧 도구였으며, 성부께서는 오늘날에도 성자를 통해 세상을 붙들고 계십니다. 창조에서 성령께서 하신 역할은 성경에 그만큼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세상의 시작

맨 처음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아직도 어떤 특정한 모양을 갖추지 않은 채 텅 비어 있었다. 어둠이 깊은 물을 뒤덮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영1:2 하나님의 영 또는 ‘하나님의 바람’ ‘강한 바람’이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1:2 움직이고 계셨다 히브리어로는 새끼를 보호하려고 둥지 위를 떠돌고 있는 새처럼 ‘빙빙 떠돌다’, ‘와락 날아 내려오다’라는 뜻.

창세기 1:1, 2

하나님의 영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모든 위격의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신약의 관점에서 보면, 여기에서는 삼위일체의 한 위격, 곧 성령의 사역이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말하며, 삼위일체 안에서 그분이 차지하시는 자리를 가리킵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께 속한 신성과, 그분이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있었던 영원한 아들 되심에 대해 말합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에 나시고 언제나 계시는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십니다.

이 말씀 때문에 유대 사람들은 더욱 예수를 죽이고 싶어하였다. 그것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라고 불러서 자신을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5:18

예수님은 또한 온전한 인간이셨습니다.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의 모든 사람처럼 예수님도 어머니의 태에서 생명을 시작하셨습니다. 마리아의 임신은 자연스럽게 진행되었고 때가 되어 예수님의 탄생으로 끝났으며, 이 일 또한 전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 일로 마리아의 약혼자 요셉은 마리아의 정절을 의심하기까지 했지만, 하나님께서 꿈으로 그에게 진실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아기 예수님께서 보통 사람의 아이들이 태어나는 것과 똑같이 세상에 오셨음을 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음을 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참으로 인간이셨기에 겪으실 수 있었던 일들입니다.

죽어 가시면서 예수님은 자신의 “영혼” 또는 “영”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 숨을 거두시다

(마 27:45-56; 막 15:33-41; 요 19:28-30)

예수께서 크게 외치셨다. “아버지, 내 영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23:46 시 31:5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마치시고 숨을 거두셨다.

누가복음 23:46

십자가에서 죽어 가시며 예수님은, 비록 자신의 몸은 무덤에 놓이겠지만 자신의 인간적인 영(곧 영혼)은 성부 하나님께 갈 것을 알고 계십니다.

또한 성경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죗값을 치른다는 것을 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의 책임을 스스로 지시고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그분의 죽음이 이룬 일이 우리에게 적용되어 우리는 죄 사함과 하나님과의 화평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부활로 죽음을 이기셨고, 이제 죽음은 그분의 백성에게 아무런 권세도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육체의 죽음을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죽지 않으며 죽음의 고통을 겪지 않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의 부활은 언젠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부활의 몸, 곧 지금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몸과 같이 더 이상 죽음에 매이지 않는 몸을 주실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신앙의 중심이십니다. 그분은 우주의 주님이시며, 인류의 모든 역사가 그 주위를 도는 중심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하나님, 우리의 대제사장,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은 그분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과 연합하여 생명을 얻는 데 있습니다.

성령

성령을 믿사오며

4세기 이후로 성령의 신성은 거의 의심받은 적이 없습니다. 성령의 신성은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으며 교회가 언제나 지켜 온 믿음입니다. 기독교 초기 몇 세기 동안에도 성령의 신성에 의문이 제기된 일은 매우 드물었고, 그것도 하나님이 한 위격이시라고 고집한 사람들에게서만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성령을 직접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베드로가 말하였다. “아나니아, 어찌하여 당신은 사탄에게 홀려서, 성령께 거짓말을 하고, 땅을 팔아 생긴 돈을 떼어서 몰래 숨겼습니까? 그 땅은 팔기 전에도 당신 것이었고, 판 뒤에도 그 돈을 당신 마음대로 쓸 수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나쁜 짓을 할 마음을 먹었습니까? 당신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5:3, 4

하나님께 예배할 때 우리는 성령의 신성을 인정하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그분 앞에 엎드리고 신실하게 그분을 섬깁니다. 우리는 그분께 기도하고, 찬양으로 그분을 높이며, 성례와 영적 은사를 통해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그분의 사역을 드러냅니다.

성령은 모든 피조 세계 가운데 직접, 인격적으로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영을 통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창조하시고, 만물을 붙드시며, 기적을 행하시는 등의 일을 하십니다.

교회

“교회”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하러 모이는 건물을 떠올립니다. 그것은 크고 화려하게 장식된 대성당일 수도 있습니다. 작고 소박한 예배당이나 심지어 예전에 창고였던 건물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집이나 오두막, 혹은 신자들이 모이는 동굴조차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교회”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백성,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거룩한 공동체를 뜻합니다.

거룩한 공회와 … 믿사옵나이다

우리 시대에 많은 그리스도인은 교회가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진실한 신자들도 흔히 조직으로서의 교회는 순전히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며,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를 방해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교회는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분의 백성의 모임이요, 그분께서 자신에게 신실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주된 수단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교회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작하고 지켜 나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너는 베드로16:18 베드로 이 이름은 ‘바위’ 라는 뜻.다. 나는 이 바위16:18 바위 베드로 또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가리킨다.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힘16:18 죽음의 힘 글자 그대로의 뜻은 ‘저승의 문’이 내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마태복음 16:18

교회는 구약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새로운 제도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언약 백성입니다. 하나님께는 언제나 그분의 백성이 있었고, 그 백성은 역사 속에서 여러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언제나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였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구약에서 시작하여 신약의 그리스도의 몸으로 자라 온 과정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교회를 붙들고 계심이 분명합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이며, 교회가 하나님의 목적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람이 만들어 낸 것도 아니고 성경에서 벗어난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그분을 섬기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도록 구별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삶은 초대 신자들의 삶이나 사도신경이 기록될 당시 신자들의 삶과 여러 면에서 다릅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하나로 모읍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교회는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이 땅의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키도록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입니다. 교회인 우리는 주님께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백성입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서로 하나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

구원

우리는 위대하신 우리 하나님,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그분이 세우신 교회를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은 우리에게 구원의 약속이 있다는 복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죄를 용서하시며,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우리를 위해 놀라운 미래를 예비해 두셨음을 확신하며 기뻐합니다.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 믿사옵나이다

성경의 진리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해결해야 했던 주요 문제 가운데 하나가 죄의 문제였음을 인정합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의 복에서 끊어 놓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저주를 불러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의 문제를 말할 때 우리가 뜻하는 것은 죄가 우리에게 정죄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다면, 죄에서도, 죄의 결과에서도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죄를 짓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반항합니다. 죄는 곧 법에 반항하는 것입니다.

요한1서 3:4

죄는 인류를 하나님의 저주 아래 두었고,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를 깨뜨렸으며, 우리 힘으로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죄는 우리를 영원한 정죄에 처하게 했고, 오직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비로 우리에게 구속자를 보내기로 하셨습니다.

죄의 문제는 참으로 심각합니다. 온 인류는 정죄와 멸망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은총을 되찾을 수도 없고,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 죄를 덮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용서가 없다면 우리에게는 구원의 소망이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은혜를 받은 것은, 여러분이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구원은 하나님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여러분이 한 어떤 일 때문에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자신을 구원했다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2:8, 9

성부께서는 예수님과 똑같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구원의 계획은 예수님이 아니라 성부께 속한 것이었습니다. 성자를 보내어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신 분은 성부이십니다. 우리를 향한 성부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성부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기꺼이 그분의 아들을 희생하기로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찌나 사랑하셨던지 당신의 외아들까지 주셨다. 그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삶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3:16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가르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용서를 받고, 어떤 사람들은 받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그 이유는 용서에는 보통 개인의 책임이라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자신에게 지워진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은 용서를 받고, 이 책임을 피하는 사람들은 용서를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한 것을 꼭 지키시는 분이며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잘못을 깨끗이 씻어 주실 것입니다.

요한1서 1:9

몸이 다시 사는 것과 … 믿사옵나이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의 영혼뿐 아니라 몸도 영화롭게 될 것을 성경이 분명히 가르친다는 것을 봅니다.

우리의 몸은 죄 때문에 죽습니다. 육체의 죽음은 인간의 불법과 타락에 대한 형벌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 몸이 새롭게 될 것을 선포합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영혼과 몸을 아우르는 온 사람을 구속하러 오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부활은 영광으로 가득합니다. 부활은 우리가 크게 기뻐하고 승리를 누리는 이유입니다. 우리 몸이 부활할 때, 우리는 마침내 죽음에 대한 최종 승리를 선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모든 복을 상속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한편으로 영생은 우리가 거듭나는 순간에 시작됩니다. 우리의 영은 살아나고 결코 죽지 않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영생은 우리의 몸도 부활 때에 살아나기 전까지는 온전히 시작되지 않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그를 믿는 사람은 모두 영원한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모두 살릴 것이다.”

요한복음 6:40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영혼의 영생이 이 세상에서, 곧 우리가 거듭나는 순간에 시작된다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심판의 날에 우리 몸이 다시 살아나기 전까지는 우리가 생명을 온전히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의 존재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영혼의 구속 덕분에 영생을 미리 맛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에도 새 생명이 주어질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계획하신 대로 살게 될 것입니다.